<성벽(城壁)>은 저자 시집 중 처녀작으로 본래 초판본은 1937년 풍림사 간(刊)이며 일부 시를 추가하여 광복 이후 1947년(아문각 刊)에서 재출간하였다.
성벽에 이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헌사」와 세 번째 「나사는 곳」은 저자의 대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총 22편의 시를 담았으며 이봉구가 쓴 ‘성벽 시절의 장환’의 발문으로 마감하였다.
초판본 시집은 어린 시절 노작(勞作)한 것으로 풍림사 이봉구 씨 이름으로 100부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서평>
<본문 중에서>
- 월향구천곡(月香九天曲)
오랑주 껍질을 벗기면
손을 적신다.
향(香)내가 난다.
점잖은 사람 여러이 보이인 중(中)에 여럿은 웃고 떠드나
기녀(妓女)는 호올로
옛 사나이와 흡사한 모습을 찾고 있었다.
- 성벽(城壁)
세세전대만년성(世世傳代萬年盛)하리라는 성벽(城壁)은 편협(偏狹)한 야심(野心)처럼 검고 빽 빽하거니, 그러나 보수(保守)는 진보(進步)를 허락(許諾)치 않어 뜨거운 물 끼언ㅅ고 고추가루 뿌리든 성벽(城壁)은 오래인 휴식(休息)에 인제는 이끼와 등넝쿨이 서로 엉키어 면도(面刀) 않은 턱어리처럼 지저분하도다.
- 성씨보(姓氏譜)
내 성(姓)은 오씨(吳氏). 어째서 오가(吳哥)인지 나는 모른다. 가급적(可及的)으로 알리워 주는 것은 해주(海州)로 이사(移舍)온 일청인(一淸人)이 조상(祖上)이라는 가계보(家系譜)의 검은 먹글씨. 옛날은 대국 숭배(大國崇拜)를 유─심히는 하고 싶어서, 우리 할아버니는 진실 이가(李哥)였는지 상놈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똑똑한 사람들은 항상(恒常) 가계보를 창작(創作)하였고 매매(賣買)하였다. 나는 역사(歷史)를, 내 성(姓)을 믿지 않어도 좋다. 해변(海邊)가으로 밀려온 소라 속처럼 나도 껍데기가 무척은 무거웁고나. 수퉁하구나. 이기적(利己的)인, 너무나 이기적(利己的)인 애욕(愛慾)을 잊을랴면은 나는 성씨보가 필요(必要)치 않다. 성씨보와 같은 관습(慣習)이 필요치 않다.
*오장환(吳章煥)(1916~?)
충복 보은 출생
일본 메이지대학 수학
「조선문학」의 ‘목욕간’ 발표 활동 등단
시인부락 활동
월북 작가
대표작 시집 성벽(城壁), 헌사, 병든 서울, 나사는 곳, 에세닌 시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