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운동사』 (동명사 刊) 1946년 초판본으로 삼일운동사의 역사적 과정을 간략히 정리하였다. 병합과정, 삼일운동, 임시정부 세 분야로 구성하여 여러 문헌을 기초하여 기록 정리한 저술서로 삼일운동을 다룬 초창기 박은식의 『대한독립운동지혈사』, 이병헌의『3·1운동비사』 이외에 몇 가지 중에 포함하는 사료적 가치의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이를 토대로 발간 자료를 요약 정리한 최남선의 역사적 기술서로 부족하나마 사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평>
일본이 서양문명의 세례를 받고 근대적 나라의 제도를 정비하게 된 명치(明治)나 신정(新政) 이후의 조선에 대한 나라 정책을 더듬어보면~
‘조선은 자주의 나라로 일본과 함께 평등의 권리를 보유하며 이후로 양국이 화친의 책임을 다하는데, 이른바 서로 동등함의 예의로써 상대할 것이요 털끝만큼이라도 불법으로 침범하거나 시기하고 미워함이 있어서는 안 되며,~<병자수호조약 중에서)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니, 고종은 다시 이상설과 이준을 보내서 이른바 협약의 무효를 주장하도록 하였다.
광무 9년에 고국이 보호조약에 얽매이자 분연히 귀국하여 동지 이갑(李甲), 전덕(全德基)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하고 나라 안의 지사를 모아 국권 회복의 기틀을 삼았다.
3월 1일에 이르러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중앙 및 각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경성에서는 거기에 이미 결속하였던 청년 학생 중심의 행동대가~
임술년 8월에는 무오년 이래로 시베리아에 진주했던 일본군이 동아시아 공화국과 타협한 결과로 철병을 개시하여 적백(赤白) 두 군대의 최후 충돌이 전개되었다. 조선인이 적군(赤軍)(소련 공산군)에 가담하여 그 사사로운 물품에 허다한 무기 문자를 획득하였다.
도쿄의 유학생계에 사회과학연구 열기가 일어나서 궁색한 민족전선을 사회운동으로 연구로 타개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이런 풍조가 조선으로 침투하여 임술년 4월에 경성에서 종래의 조선청년연합회 가운데~
* 최남선(崔南善)(1890~1957) 호 육당(六堂), 한샘
서울 출생
사학자, 문인
동경부립제일중학 입학 와세다대학 지리역사학과 입학
황성신문, 제국신문, 독립신문 등에 논문 투고
시대일보 창간, 독립선언서 기초
종합 월간지 ‘소년’ 창간 청년학우회의 설립
주요저서 백팔번뇌, 조선역사, 조선유람기, 고사통, 조선독립운동사 등 역사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