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46년에 발간한 《조선상식문답》 속편으로 1947년 저자가 운영하던 ‘동명사’에서 발간하였다.
이전에 1937년 ‘매일신보’에 게재하였던 것을 묶어 ‘국호(國號)’를 비롯하여 10개 주제로 구성하였으며, 이후 속편에서는 학술과 문학, 조각, 건축, 일반 공예 등 8개 분야별로 하여 좀 더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재구성하였다.
1965년 일본에서 《조선상식문답(조선문화의 연구)(宗高書房)》이라는 제목으로 또한 출간하였다. 상장청(相場清) 번역으로 일한친화회(日韓親和會)에서 발간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통역관과 외무이사관, 문부성 교과용 도서검정조사위원, 전국 경찰 외국어 기능검정시험위원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서문 집필자는 일한친화회 스즈키 하지메(鈴木一) 일본 육사 출신으로 구한말 한일군사관계사 연구가로 활약했던 인물이 적고 있다.
이 책은 분야별로 모두 8권으로 구성하였으며, 본문은 원전에 따라 충실하도록 했고 관련 삽화와 주해, 한자를 병기하였다.
<서평>
-본문 중에서
미술과 예술은 대체로 의미를 공통적적으로 갖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미술(美術)이라는 말은 대개 조형(造形)미술을 의미하며 더 좁게는 회화(繪畵), 조각을 가리키는 예도 있습니다.
고구려 화가로 이름을 우리나라에 전한 인물은 아마 없는듯합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스이코(推古) 천황 18년(고구려 영양왕 21년, 경오년, 610)에 고구려에서 승려 담징(曇徵)과 법정(法定)이 오니, 담징은 불전뿐 아니라 유가(儒家)의 오경(五經)에도 능통했으며 종이와 먹의 채색과 맷돌(연애碾磑)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에 내려와서 다른 예술과 함께 회화가 한층 더 발전되었을 것은 얼른 상상되는 대로 남아있는 유적으로서 고찰할 것이 없다. 고구려와 백제에서 보는 것과 같은 고분 벽화조차 발견할 수 없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 도덕과 재주를 함께 칭송하는데 그림에도 능통하여 여류화가로 우리나라 고금에 가장 뛰어나고 영모화훼(翎毛花卉) 등의 작품은 꽤 많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성령(杜城令)은 영모잡화(翎毛雜畵), 신잠(申潛)은 묵죽(墨竹), 채무일(蔡無逸)은 초충(草蟲)으로 이름났습니다.
끝을 날카롭게 한 인두를 불에 달궈서 지폭(紙幅)(종이), 대나무 조각 등에 글씨나 그림을 검게 지져내는 것을 낙필(烙筆) 또는 낙화(烙畵)라고 합니다.
* 최남선(崔南善)(1890~1957) 호는 육당
역사가, 시인, 사상가
와세다 대학에 유학. 귀국 후 이광수와 함께 신문화 운동의 선구적 활동
1919년 삼일 독립선언서를 기초
조선총독부 관하 조선사편수위원회 위원
1938년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
1949년 반민족 행위 처벌법에 따라 수용되지만, 질병으로 석방
잡지는 한국 최초의 자유시(산문시)를 발표하였고 고서를 수집, 고전연구, 역사 연구에 노력
저서는 시조집, 단군론, 조선역사, 조선유람기, 고사통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