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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종교사(유교)

*저본: 朝鮮宗敎史(青柳綱太郎)(朝鮮研究會, 1911)(유교) 작은 반도에도 상하 3천 년의 역사가 있으며 그 문화가 매우 오래되었다. 만약 이 반도의 1천만 살아있는 영혼이 강대국으로부터 수입된 유교(儒敎)와 불교(佛敎) 본래 가르침의 요지를 충분히 음미하여 형식의 말단에 치우치지 않고 인륜의 바른길을 걸어왔다면, 아마도 그 문명은 동반구(東半球)에 광채를 발할 수 있는 일종의 선천적 사명을 지녔을 것이다. 조선에서 유교와 불교는 오랜 세월 동안 유일한 교육이자 신앙의 체계로 자리 잡았다. 고려 말인 14세기 초에는 정주학(程朱學)(朱子學)이 일어나 온 나라가 주자학(朱子學)을 종지로 삼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더욱 장려하여 성균관과 동서(東西)남중(南中)의 사학(四學)을 두고, 전국 각지에..
*저본: 朝鮮宗敎史(青柳綱太郎)(朝鮮研究會, 1911)(유교)
작은 반도에도 상하 3천 년의 역사가 있으며 그 문화가 매우 오래되었다. 만약 이 반도의 1천만 살아있는 영혼이 강대국으로부터 수입된 유교(儒敎)와 불교(佛敎) 본래 가르침의 요지를 충분히 음미하여 형식의 말단에 치우치지 않고 인륜의 바른길을 걸어왔다면, 아마도 그 문명은 동반구(東半球)에 광채를 발할 수 있는 일종의 선천적 사명을 지녔을 것이다. 조선에서 유교와 불교는 오랜 세월 동안 유일한 교육이자 신앙의 체계로 자리 잡았다. 고려 말인 14세기 초에는 정주학(程朱學)(朱子學)이 일어나 온 나라가 주자학(朱子學)을 종지로 삼게 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더욱 장려하여 성균관과 동서(東西)남중(南中)의 사학(四學)을 두고, 전국 각지에 향교(鄕校)를 설치하였다. 그러고 각 면과 동네에도 수많은 서당(書堂)이 세워졌다. 서당은 초학자(初學者)들이 유교 경전을 배우는 문호(門戶)였으며, 서당에서 향교로, 다시 성균관으로 진학하여 고등 교육을 받는 것이 순서였다. 따라서 사대부(士大夫)들은 일 년 내내 한문을 외우고 문장에 빠져 지냈으며, 학업을 마치면 경전을 강론하여 옛 성현들의 유업을 계승한다고 여겼다.
*아오야기 츠나타로(青柳綱太郎)(1877~1932) 남명(南冥)
도쿄전문학교(現 와세다대학) 졸업
1905년 조선 재무고문부 재무관을 거쳐 궁내부에서 「조선왕조실록」 편찬 종사
조선연구회 주재, 1924년 주간 「경성신문」 발행
저서 『조선소요사론』, 『조선통치론』, 『조선문화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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